EP.0 코딩의 첫걸음 — 전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?

EP.0 코딩의 첫걸음 — 전선과 전기로 이해하는 컴퓨터 하드웨어의 기원
[컴퓨터 코딩의 첫걸음] 전선과 전기로 시작하는 컴퓨터의 기원

EP.0 서론 — 태초의 시스템, 전선이 사고(思考)가 되던 시절

현대의 복잡한 칩과 수백 개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, 우리는 전선과 스위치만으로 이루어졌던 원시적 컴퓨터의 뼈대를 먼저 마주해야 합니다.

이 글은 코드를 가르치지 않습니다. 대신, 앞으로 배우게 될 모든 코드가 왜 이런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물리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출발점입니다.

전체 시스템 조감도 — 전기 미로의 전경

컴퓨터는 마법이 아니라 거대한 전기 미로입니다. 왼쪽의 입력이 미로를 통과해 오른쪽의 빛으로 나타나기까지, 모든 컴퓨터는 동일한 물리 구조를 공유합니다.

[그림 0-1] 원시적 연산 시스템_사진출처:나무위키
(입력 → 약속 → 연산 → 전송 → 출력)

원시 시스템의 5단계 물리 메커니즘

1단계: 물리적 입력 (Input) - "전선을 꼽는 행위, 물리적 의지의 투사"

오늘날의 키보드와 마우스는 추상적이지만, 초기에는 직접 전선을 꼽는 플러그보드(Plugboard)가 있었습니다.

  • 물리적 실체: 사람이 특정 구멍에 전선을 꼽는 순간, 해당 라인에는 '전압'이라는 에너지가 실립니다.
  • 통찰: 데이터는 메모리 속의 가상 숫자가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전선 그 자체였습니다. 입력은 논리가 아니라 물리적 연결의 개통이었습니다.

2단계: 물리적 약속 (Standard) - "구리선의 배치가 곧 규칙이 되다"

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수만 개입니다. 어디에 전기를 넣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'약속'이 필요했습니다.

  • 물리적 실체: "1번 전선에 전기가 들어오면 숫자 1, 10번 전선은 숫자 0이다."
  • 통찰: 하드웨어 설계자가 미리 깔아놓은 구리선의 배치가 곧 규칙(Protocol)입니다. 소프트웨어가 없던 시절, 규칙은 종이가 아닌 전선 배선도에 적혀 있었습니다.

3단계: 물리적 연산 (Processing) - "이미 완성되어 있는 결정론적 미로"

이미지 중앙의 복잡한 회로를 보십시오. 이것이 현대 CPU 속에 박혀 있는 '연산 회로'의 원형입니다.

  • 물리적 실체: '더하기'를 하고 싶다면 전기가 덧셈 결과값으로만 흐르도록 진공관과 코일을 미리 배선해 둡니다.
  • PLC와의 상관관계: 질문자님이 간파하신 것처럼, 이는 래더 로직(Ladder Logic)과 완벽히 일치합니다. 전기는 깔린 길을 따라 흐를 뿐이며, 계산 결과는 소프트웨어가 내는 것이 아니라 전기가 미로 끝에 도달하는 물리적 필연성에 의해 결정됩니다.

4단계: 물리적 전송 (Transmission) - "에너지가 나르는 정보의 경로"

미로를 빠져나온 전기는 이제 결과를 시각화하기 위해 출력 장치로 향합니다.

  • 물리적 실체: 전선 하나하나가 하나의 결과를 담당합니다. 전기가 끊기면 정보도 사라지는 '실시간성'을 가집니다.
  • 통찰: 전기가 끊기지 않고 끝까지 도달해야 정보가 전달된다는 연결의 무결성이 핵심입니다. 이는 훗날 수억 번 깜빡이는 펄스의 기차놀이(직렬 통신)로 진화하게 됩니다.

5단계: 물리적 표시 (Output) - "전자가 빛으로 승화하는 지점"

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전기는 전구(램프)를 밝히며 인간과 만납니다.

  • 물리적 실체: 5번 전선에 도달한 전자가 필라멘트를 가열해 빛을 냅니다.
  • 통찰: 이것이 오늘날 모니터 픽셀(Pixel)의 조상입니다. 전기에너지가 빛에너지로 변환되어 인간의 시각 신경에 도달하는 순간, 비로소 '데이터'는 '정보'가 됩니다.
서론을 마치며: 엑스레이로 본 컴퓨터

현대의 컴퓨터는 이 거대한 미로를 현미경으로도 보기 힘들 만큼 가늘게 줄여 실리콘 판(집적회로) 위에 고정한 것입니다. 우리가 배우게 될 코딩(Coding)은 결국 이 거대한 미로의 빗장들을 어떤 순서로 열고 닫을지 결정하는 '실시간 스위칭 설계도'를 그리는 작업입니다.

핵심 통찰

현대의 CPU는 이 거대한 전기 미로를 나노 단위로 축소해 실리콘 위에 고정한 결과물입니다. 우리는 코딩을 통해 이 미로의 빗장을 어떤 순서로 열고 닫을지 정하는 전기 설계도(추상화된 물리 명령)를 작성하고 있는 셈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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